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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대 이후 2007년부터 이리저리 거처를 옮겨다닌 끝에, 드디어 오롯이 혼자 살게 되었다. 6만원 주고 산 금성의 200리터 짜리 냉장고를 뜯어서 소음을 잡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었다. 밥은 냄비에 해서 먹었고 빨래를 돌렸다. 이사한 후, 청소 강박증에 걸려 시름시름 앓았는데, 일주일이 지나고 이제야 안정감이 생겼다. (그러나, 청소 강박증이 해소되진 않았다) 앞으로 방을 가꾸는데 주력할 것이다. 나에겐 식물들이 필요하다. 내일부터 본격적으로 공부와 일의 시작. 자기 자신이 변해가는 모습을 주시하고 있어야 한다. ![]() 민주노동당 탈당의 변 민주노동당……. 제 짧은 인생에서 이 다섯글자를 마음속에 되뇌이며 살아간지 5년이 되어갑니다. 짧지요. 물론, 짧습니다. 수많은 선배들이 가시밭길을 헤쳐온 세월에 비하면 그저 초라할 뿐입니다.하지만 저도 스무살 무렵부터 스물다섯을 먹은 올해까지 저의 소중한 젊은 나날들을 민주노동당과 함께 보내왔습니다. 이제는 그 시간들을 정리하려 합니다. 진보정당은 무엇으로 존재 가능한가 2003년 가을이었죠. 탈당을 결심한 지금, 아직까지도 제가 당 활동을 시작했던 순간들이 기억에 납니다. 하루는 학교 기숙사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데, 당시 성산동 분회장 임정기 당원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분회 모임 나오라는 전화였지요. 자던 중에 걸려온 전화가 귀찮기도 했고 당시엔 분회가 뭔지도 몰랐었기 때문에 대충 "네, 네"하면서 임정기 분회장과의 통화를 봉합했습니다. 다시 자려는데, 분회장이 모임에 꿰어내려 했던 말이 자꾸 귀에 걸렸습니다. "동지같은 당원이 활동을 시작하면 진보정치는 충분히 구현됩니다." 그래서 뭐하는 건가 한번 나가보았습니다. 죄 나이 많은 아줌마, 아저씨에 그나마도 몇 명되지 않는 인원, 모여있는 모습이 낯설기도 하고 좀 처량해 보이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성미산 배수지 건설반대 운동을 하면서 얻는 경험을 가지고 사뭇 진지하게 지역 정치, 생태 정치를 토론하는 모습을 보며 처음의 인상은 지워야 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두 번 당 모임에 나가면서 다른 어떤 것보다 저를 매료시켰던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분회모임을 조직하는 당원이 분회모임은 어떤 성격을 지니고, 어떤 컨텐츠를 가져야 하는지 먼저 의문을 제기하는 모습, 다른 누구보다 중앙위원 자신이 당내 의사결정 구조에 대해서 회의하며 고민하는 모습, 스스로를 당의 강령, 당헌당규 마스터라고 자부하는 당원 동지가 당 중심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모습에서 당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2004년 총선 선거운동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당 활동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구당 사무실 한켠에 마련된 곳에서 선거기간 내내 지역주민들한테 지지를 부탁하는 전화를 돌렸지요. 학교에서 지구당 사무실까지 왕복 3시간 거리를 다니며 3시간 전화 돌리는게 피곤하고 귀찮으면서도, 총선시기 웹진의 헤드라인이 '이러다 당선되는 거 아니야'라고 뽑혀져 나온 것을 보며 '이 사람들 제정신인가'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선거기간 동안 매일같이 지구당 사무실에 가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었죠.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당시 정경섭 마포을 지역구 후보가 당선은 커녕 기탁금도 못 돌려받을 것이란 걸 알면서도, 전화 몇 통 돌려봤자 지지율에 큰 영향이 없을 거란 걸 알면서도 자꾸 하고 싶었습니다. 왜냐면 저는 민주노동당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에는 민주노동당이 내거는 가치와 새롭게 열어나가고자 하는 사회의 정당함 뿐 아니라 실현시켜 나가고자 하는 진보적 가치가 변질되지 않도록 붙들어 매고 성찰하는 건강함이 살아 움직이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민주노동당은 이미 죽었다. 하지만 당에 대한 믿음은 2004년 총선 승리의 고무감이 사라지기도 전에 균열이 갔습니다. 원내 진출 이후 두가지 '사건'을 접하면서부터 였습니다. 남성 당직자가 여성 당직자를 유리접시로 머리를 후려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충격적이었습니다. 진보정당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또 한편, 2004년 1기 지도부 선거 기간 중 이용대 정책위의장 후보자가 인터뷰에서 “성소수자는 자본주의 파행의 산물이다“라는 발언을 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무슨 뜻으로 저렇게 얘기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건 그의 의식수준 그 자체였습니다. 말하자면, 진정성이 담긴 발언이라고 해야할까요. 당시, 저는 2004년 총선 이후 당의 양적인 발전에 걸맞게 질적인 발전을 꾀하자는 당원들의 문제의식을 따라 지구당 홈페이지 개편 계획을 짜는 등 당 발전을 상상하는 즐거운 작업을 하고 있었고 당에 가입한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충격적인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에 이상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일들을 처리하면서 당은 발전하는 것이고 다시 순항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당원들이 압박했음에도 불구하고 폭행자인 경기동부연합 활동가가 제명당하지 않고 4년 자격정지에 그쳤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운동단체 활동가로 당당히 인터뷰도 하더군요. 경악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사건이 터질 때면, 매번 '어떻게 같이 활동하던 동지를 그렇게 매정하게 내칠 수 있느냐'는 식의 일치단결된 자기 조직원 감싸기 논리를 보아왔습니다. 중앙 차원이나 마포지역, 혹은 어느 지역 할 거 없이 말입니다. 또, 이용대는 2006년 2기 지도부 선거에서 민주노동당 정책위의장에 무리없이 당선되더군요. 범민련 남측본부의 기관지 <민족의 진로> 2007년 3월호는 동성애와 트랜스젠더, 이주노동자 문제 등을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이남사회가 민족성을 견지하지 못하고 민족문화전통을 홀대하며, 자주적이고 민주적이지 못한 상태에서 외래적으로 침습해오고 그것이 확대재생산되는 구조속에서 이 문제들이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은 제가 처음 접한 두 가지 사건일 뿐입니다. 지난 4년간 당에는 당의 강령과 정신을 배반하고 원칙을 훼손하는 수많은 사건들이 일어났습니다. 이걸 다 얘기하자면, 책이 한 권 탈고될 겁니다. 많이 회자되는 일심회 사건, 북핵 사건, 회계 부정사건에 대해선 언급하지도 않겠습니다. 어쨌거나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문제제기하는 당원들은 매번 ‘분탕질 그만하라’ 혹은 ‘분파주의자’라는 소리를 들어가면서 지리멸렬한 진흙탕 싸움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관련자가 제대로 처벌되거나 평가된 사례는 거의 전무합니다. 저를 절망하게 한 건 패악적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을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부조리함 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던 당원들은 조금씩 당을 회의하며, 지쳐 떨어져 나갔습니다. 문득, 2004년 연말 군 입대전 작별인사로 정경섭 위원장에게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선거 기간 즈음 당적을 이동하고 당비대납 해서 지역 권력을 장악해 나가던 것을 빗대 “저 제대할 때쯤이면, (당시)지구당 망하고 위원장은 패잔병이 되어 있는 거 아니냐”고 농담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2007년 3월, 제대하고 보니 위원장은 있는데, 예전에 보던 활동당원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나마 보게 된 몇 동지들은 이미 진력이 날 대로 나버려, 탈진 상태에 빠져 있었습니다. 서글펐습니다. 단지, 예전에 보던 당원들을 못 봐서 서글픈 것이 아니라 진성당원제를 표방한다는 민주노동당의 당원은 이제 투표에 참여하기 위해서 존재하거나 집회에 동원되기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기 때문에 서글펐습니다. 양 정파가 적대적 공생을 이어가는 동안 당에는 극소수의 열성당원과 몇몇의 활동가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당비납부율은 계속 떨어졌고 당에 관심을 갖는 당원의 수는 줄어만 갔습니다. 저는 2007년 3월 5일 제대하였습니다. 그리고 3월 11일 당대회 대회장에 찾아가 ‘진보정당 정신 복원’, ‘개방형 경선제 반대’ 피켓을 드는 것으로 제대 후 첫 당 활동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부결된 것에 기뻐하면서 함께 피케팅한 동지들과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데, 너무도 서글펐습니다. 내가 지금 무얼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끊임없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언제까지 당 원칙을 가지고 당내에서 소모적인 싸움을 계속해야 하는 것인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영원히 반복될 ‘혁신’이라는 레퍼토리 그렇게 당이 죽어가는 와중에 대선 경선이 도래했고 자주파는 대선•총선과 총선 이후까지 당내에서 계속적인 영향력 행사를 위해 권영길을 지목했습니다. 그리고 당선되었습니다. 언제나와 같이 당내에서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자주파의 모습을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같이 과정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재확인시켜 주었습니다. 노회찬 의원 비방 동영상 정도는 이제 무던해 져버렸습니다. 그렇게 백만민중대회를 외치고 코리아연방공화국을 부르짖다 냉엄한 대선 결과를 얻었습니다. 대선을 계기로 여러 가지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대선 칠십만표는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목소리부터 심상정 비대위를 꾸려서 당을 혁신하자는 목소리, 민주노동당에 한계를 느끼고 신당을 창당하자는 목소리까지. 그리고 제가 탈당의 변을 쓰고 있는 오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난 12일 중앙위에서 소위, '심상정 비대위 안’이 원안 통과되는 순간, 탈당을 결심하였습니다. 혁신. 아름다운 단어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들으니 매혹적이기까지 하네요. 당을 혁신하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 혁신을 위해 함께 뛰어보자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무엇을 혁신하시겠습니까? 혁신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당원은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종북주의’를 청산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실현 가능한 것입니까? 심상정 비대위원장은 종북주의의 상징적 사건으로 ‘일심회 사건’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멀리갈 것도 없이, 마포 NL당원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당 간부의 정보를 당 외부로 유출 시킨 자를 출당시키는 데 동의하십니까? 최기영 당원과 이정훈 당원을 출당시키는 데 몇이나 동의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일심회 사건을 재평가하고 관련자를 출당시킨다 하더라도 종북주의가 청산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하게 인식하여야 할 점은 그동안 당이 겪어왔던 문제와 시시때때로 터지는 사건들은 단발적인 사고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차이에서 기인한다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를 정파의 문제라고 얘기해야 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민주노동당의 문제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 적대적 공생관계를 이루어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아시는 바대로, 자주파는 2001년 결의한 이른바, 9월테제’를 통해 민주노동당을 통해 민족민주정당 수립이라는 전략적 목표를 세우고 당에 참여하였습니다. 민족민주정당은 노동자•민중의 정치세력화에 이바지하는 정당이 아니라 각계각층 광범위한 애국적 민주역량을 망라하여 통일전선에 복무하는 정당입니다. 애초에 합의할 수 없는 사상과 정치 목표가 한 정당 안에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수인 한쪽은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어떤 패악질을 해도 용인될 수 있었으며, 소수는 무능하고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수는 대선 이후, 당이 위기라는 목소리가 높아짐으로 인해 소수에게 권력을 넘겼습니다. 권력을 이양 받은 소수는 당 혁신을 한다고 얘기합니다. 다수에게 이양 받은 권력으로 다수를 혁신하겠다고 합니다. 합의할 수 없는 근본적 차이가 있는데, 어떡하시겠습니까?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다수 전부를 출당시키거나, 다수 전부가 뇌 수술을 하거나. 분명히 말씀드리건대, 소수에게로의 권력 이양은 당면한 위기 상황을 잠재우기 위한 일시적 이양에 불과할 뿐입니다. 분위기가 갖춰지면 다수는 언제든지 당 권력을 찾아올 수 있습니다. 혁신은 당이 위기상황을 맞았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던 사탕발림용 레퍼토리 였습니다. 얼마나 더 경험해야 학습효과가 일어나는 겁니까? 제가 탈당을 결심하고 진보정당에 대한 희망을 접게된 데에는 다른 무엇보다 이 근본적인 차이와 조직적 열세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좌파들이 봉합을 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당을 썩게 한 적대적 공생은 2008년에도 이어지게 되었고 이제 더 이상은 그들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18명의 서울지역 위원장/총선 후보의 성명서를 보았습니다. 저는 직접적으로 제가 투표할 지역구인 민주노동당 마포을 지역구 정경섭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합니다. 민주노동당 당원 동지 여러분, 행복하셨습니까? 그동안 당내 소위 좌파라는 사람들은 반주사의 프레임에 갇혀 계속해서 소모적인 싸움을 하거나 같이 원칙을 훼손하며, 공생해 왔습니다. 진보정당에서 논의하고 싸워야 할 진보적 의제를 꺼내들 정력은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작은 목소리는 묻혀지고 방치되었습니다. 민주노동당은 희망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당에 가입했을 때만해도, 저는 NL이 무엇의 약자인지, PD가 무엇의 약자인지 조차도 알지 못했습니다. 신입당원에게 이러한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는 학생운동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떤 운동의 경험없이 스무살의 나이에 생짜로 민주노동당이라는 대중진보정당에 가입을 했고 활동해 왔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당 활동을 하면서 제 자신 존재 자체가 진보정당운동의 성과라고 자부해왔습니다. 정세적으로 어려울 때, 힘들어하는 당원동지에게 제 자신을 가리키며 "운동이 재생산되고 있으니, 희망을 갖읍시다."라고 농담아닌 농담을 건네기도 했습니다. 이제 그런 기억들은 아련히 멀어져만 갑니다. 당원증을 받은 이래로 제 지갑, 신분증 자리에는 엄지손가락 지문이 날인된 주민등록증 대신 당원번호 - 43664라고 적힌 민주노동당 당원증을 넣어 두었습니다. 이제 그 자리를 비워두려고 합니다. 20080115 ![]()
오래된 일이 되어버렸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 사귄 친구들과 통하는 구석이 많아 대학 생활의 꽤 많은 시간을 함께했다. 갓 대학에 입학해서 같이 술도 진탕 마시고 밴드도 해보겠다고 까불거리느라 나름 재밌고 바쁘게 대학생활을 시작해나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아마도 그 때쯤에 벚꽃이 피어서 그랬을까. 한편으로, 허한 기분이 들었다. 한창, 재밌는 일들을 벌려 해나가는 와중에 묘한 결핍감이 드는 건 무엇 때문인지. 그 원인에는 벚꽃보다 뚜렷한 무엇이 있었다. 그건, 하루가 멀게 들려오는 신생 커플 뉴스 및 누군가의 작업 뉴스였다. 새내기보다 한 발 빠르게 그리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남자 선배들의 동향과 누가 누굴 좋아하는지에 대한 신속한 보고는 아주캠프의 감자탕(大)(송박사 깐풍기(大)나 둘둘치킨 양념 반 후라이드 반으로 바꾸어도 좋다)보다 맛있는 안주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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